산업의 태동
상업적 음반 레코딩의 청사진을 제시한 사람은 도이치 그라모폰의 창립자인 에밀 베를리너(Emile Berliner, 1851-1929)이다. 토마스 에디슨은 1877년에 왁스 실린더를 사용한 납관식 축음기(phonograph)를 발명했다. 1980년대 중반에 베를리너가 처음으로 판매한 디스크는 셸락 혼합물로 만들었으며, 직경은 5인치였고, 가장자리에서 시작하여 중심으로 향하는 나선형의 소리골이 기록된 형태였다. 이 디스크들은 전기적 처리를 통해 복제하거나 찍어낼 수 있었다.
베를리너는 또한 이렇게 기록된 소리를 재생할 수 있는 장비도 개발하였는데, 초기에는 왁스 실린더를 사용했으나 곧 원반 모양의 디스크로 대체하였으며, 그는 이 장치를 “그라모폰(gramophone)”이라 명명했다.
어쿠스틱 레코딩
이 녹음방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음성 신호가 진동판(membrane)을 떨리게 하면, 이 진동이 바늘을 통해 전달되면서 물결 모양의 소리골(groove)이 매체 위에 새겨진다. 소리를 재생할 때는, 바늘이 소리골을 타고 이동하면서 흔들리는 진동이 다시 진동판으로 전달되어 그 소리를 재현해내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소리를 저장하는 매체는 그것이 담아내고자 하는 원래의 진동과 유사한 “아날로그”의 형태 그대로 신호를 기록한다.
Joseph Berliner and his workers(1898)도이치 그라모폰
1898년, 에밀 베를리너와 그의 형제인 요제프는 하노버에 도이치 그라모폰을 설립하고, 첫번째 레코드와 양산된 그라모폰을 내놓았다.
Caruso - Andrea Chenier: "Un di, all'azzurro spazio"(1907)도이치 그라모폰
1895년에는 7인치 레코드판이 소개되었는데, 70 rpm에서 90초에 달하는 재생시간을 가지고 있었으며, 후에 전기 모터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78rpm으로 증가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카루소가 녹음한 수많은 78회전 레코드 중 하나이다 (1907년 제작).
1901년에는 최초의 10인치 레코드가 등장했으며, 그로부터 2년 뒤에는 한 면당 재생시간이 5분에 달하는 12인치 레코드가 선을 보였다.
Erna Sack (soprano) with orchestra, Cond. Walter Schütze, ℗ Deutsche Grammophon Gesellschaft 1936 및 the Shellac Project의 Erna Sack (soprano) with orchestra, Cond. Walter Schütze - Flowers from Nice(1936)도이치 그라모폰
전기 녹음 방식이 소리를 훨씬 더 원음에 근접하게 재현해 낸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전기 녹음 기술은 1925년에 처음 도입되었으며 그로부터 2년 뒤에 나온 전기식 라우드스피커는 음성 녹음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진동을 녹음침으로 직접 전달하던 기계식 전환 방식은 이제 마이크로폰(microphone)과 앰프(amplifier)에 자리를 내 주었다. 이러한 진화는 1934년 hi-fi(high fidelity)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보다 분명해졌는데, 이 개념은 녹음가능한 주파수의 범위를 30~ 8000Hz까지 넓힌 것으로 이는 음질의 비약적인 발전을 의미했다. 이 음원은 1936년에 녹음한 에르나 자크(Erna Sack)가 부른 "Ein Blumenstrauß aus Nizza(니스에서 온 꽃다발)"이다.
전후 변혁기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이치 그라모폰이 목표로 삼았던 것은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적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부족한 물자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생산량을 정상 수치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이 시기까지는, 78 rpm 레코드가 아직도 통용되고 있었다. 1946년부터 도이치 그라모폰은 모든 회사 중에서 최초로 모든 녹음에 자기식 테이프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전쟁기간 동안 독일의 기술자들이 수행했던 역할을 이어받아 선도적 연구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1950년에 소리골 사이의 간격을 조절하는 기술이 등장하면서 한 면당 재생시간이 9분까지 증가했다.
바이닐의 도래
1951년 DG의 하노버 공장에서 생산된 최초의 LP(long-playing micro groove records)의 모습. 폴리염화비닐(PVC)로 제작하는 이 레코드판은 10인치(한면 당 15분)와 12인치(한면당 30분)라는 두개의 다른 사이즈로 제작되었다. 둘 다 회전 속도는 분당 33 1/3으로 동일했다. 사진의 레코드는 초기의 바이닐 LP중 하나이다. 중심부에 위치한 노란색 고리는 당시 DG의 음반 커버의 특징이었다.
Dr. Hans-Werner Steinhausen도이치 그라모폰
한스-베르너 슈타인하우젠(Hans-Werner Steinhausen) 박사는 1950년에 도이치 그라모폰에 기술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보다 나은 소리의 재현을 보장하는 매우 엄격한 레코드 생산 기준을 정립했다. 품질은 가격에 비례한다. 하노버 공장에서 생산된 LP는 24마르크의 가격에 판매되었는데,당시의 평균 월수입은 350 마르크였다.
Records of Jochum conducting Wagner, Mozart and Brahms released in 1956(1956)도이치 그라모폰
1953년부터 도입된, 7인치의 직경에 한면당 5분의 재생시간을 가진 45rpm의 폴리에틸렌 레코드 역시 작은 규모의 클래식 작품을 녹음하는 데에 쓰이며 함께 통용되었다. 오이겐 요훔과 챔버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한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의 프랑스판 앨범의 사진이다.
스테레오의 출현
한 지점에서의 소리만을 표현하는, 공간감이 부족하여 거의 추상예술에 가깝게 느껴지던 1차원적인 방식은 보다 입체적인 2차원의 사운드 이미지로 대체되었다.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녹음한 첫번째 스테레오 디스크는 카를 뵘이 지휘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서 1958년에 발매되었다.
디지털의 시대
1970년대 말 CD가 불러일으킨 음성 처리 기술의 변화는 실로 놀라온 것이었다. 매우 흥미롭게도, 120밀리미터(4.7인치)의 직경을 가진 이 매체는 에밀 베를리너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평판 디스크와 크기가 거의 동일하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이런 CD 혁명을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 사진에서 소니의 설립자인 모리타 아키오와 함께 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CD가 국제무대에 소개되던 1981년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 기간 중에 촬영한 것이다.
Claudio Abbado: Mahler - Symphony of a Thousand(1995)도이치 그라모폰
1994년, DG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지휘 하에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한 말러의 <천인 교향곡>을 녹음하면서 최초로 24비트 멀티트랙 레코딩 기술을 선보였는데 이는 “4D 오디오 레코딩”기술의 궁극적인 진화라 할 수 있다.
Text by: Rémy Louis